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뜻
≪주 예수의 사랑ㆍ사명≫이란 단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로마 병정에게 심하게 맞으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힘겹게 십자가에 못 박힐 그곳까지 걸어가시는 모습에 눈물이 멈출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채찍이 박힐 때마다 상처로 흘리는 피를 봤기 때문입니다. 골고다로 향하는 그 길도 주님의 보혈이 깔려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도 깊고 크셨습니다! 창조주 말고 어느 누가 인류에게 이렇게 깊고 큰 사랑이 있겠습니까? 저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예수님은 왜 그렇게 크나큰 수모와 육신의 고통을 받으시면서까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을 가셨을까? 거기에는 전 인류를 속량하시는 것 말고도 또 어떤 뜻이 있었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의 그 마음을 더욱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할 때, 농부들이 씨 뿌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무엇이 가라지인지도 알고 무엇이 누룩인지도 알고 있었다. 또한 예수는 인류가 보화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보화를 감추는 비유도 하고, 보화를 찾는 비유도 해 주었다. 예수는 생활 속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어부들이 그물을 치는 등등 인류의 생활과 관련되는 그런 행위들을 친히 보았고, 동시에 그런 생활을 체험하기도 했었다. 예수는 모든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하루 세 끼와 일상에서 일하고 쉬는 것을 체험하고 평범한 사람의 생활을 친히 겪으면서 다른 사람의 생활도 목격하였다. 예수가 그 모든 것을 목격하고 친히 겪을 때, 어떻게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인지, 어떻게 자신이 더 자유롭고 더 편하게 살 것인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그런 진실한 생활을 체험하는 동시에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쓰라림을 보았고, 사탄의 패괴 아래에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죄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의 쓰라림과 가련함과 비참함도 보았다. 예수는 인류의 생활을 체험하는 동시에, 패괴 가운데서 생활하는 인류가 너무나도 의지할 데 없다는 것도 몸소 느끼게 되었고 또한 죄 가운데서 생활하는 인류가 사탄에게 시달리고 죄악에 시달려 목표와 방향이 없는 참상도 느끼게 되었다. 예수가 그런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신성에서 본 것일까 아니면 인성에서 본 것일까? 예수의 인성은 존재하고 살아 있는 것이어서 그 모든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실질, 곧 예수의 신성도 그것을 당연히 보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 자체―예수, 그 사람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가 본 그 모든 것은 자신에게 그 당시에 성육신이 담당하는 사역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예수는 그때에 성육신이 담당할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임하는 고통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고 있었지만, 죄 가운데 있는 인류의 무기력함을 보게 되었을 때, 인류가 율법 아래에서 가련하게 살면서 힘없이 몸부림치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예수의 마음은 더욱더 아팠다. 그리하여 예수는 더욱더 절박하게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려고 하였다. 예수는 마음속으로 어떤 곤경에 직면하게 되든, 앞으로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되든, 죄 가운데서 살고 있는 사람을 구속해야겠다고 더욱 굳게 생각하였다. 그 과정에서, 예수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이 어떤 것인지, 담당해야 할 부탁이 어떤 것인지 더욱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는 자신이 담당할 사역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완성하려고 했다. 곧, 인류가 더 이상 죄 가운데서 살지 않도록, 그와 동시에 하나님도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람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그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는 진일보의 사역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사람의 모든 죄를 담당하고 인류를 대신해 속죄제가 되는 일을 완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마음속으로 기꺼이 인류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자신을 희생하려고 했고, 속죄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뿐만 아니라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그 사역을 완성하려고 했었다. 심지어 예수는 인류 생활의 참상을 보았을 때, 되도록 빨리 일분일초도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려고 했었다. 예수는 자신에게 그런 절박한 마음이 있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것인지는 고려하지 않고, 더 이상 자신이 얼마나 큰 굴욕을 참아야 하는지도 고려하지 않았다. 예수의 마음속 신념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즉, 자신을 바치기만 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제가 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고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전개할 수 있으며, 죄 가운데 있는 인류의 생활과 생존 상태가 이제 곧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의 신념과 예수가 하고자 마음을 굳힌 일은 모두 인류를 구원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예수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즉,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여 다음 단계 사역을 순조롭게 전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예수의 마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예수님은 자신이 그렇게 큰 치욕과 고통을 받을 줄 알면서도 묵묵히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곳으로 가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죄 속에 살면서 사탄에게 시달리는 인류를 구속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의 결박을 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오게 하려는 것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사탄의 흑암 권세 아래에 있는 인류를 철저히 구원하는, 즉 인류를 경영하는 다음 단계의 역사를 위해 길을 닦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고 절박한 마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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