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올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장 22~28절에 기재되어 있는 이 내용을 보고 난 후, 저는 하나님에 대한 가나안 여자의 믿음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를 개라고 말해도 그녀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주님의 은총과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인터넷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읽게 된 후 이 이야기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고, 왜 예수께서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셨는지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왜 주 예수가 그 사람의 믿음을 칭찬했느냐? 그녀가 개가 되고 싶어 했거나 상에서 떨어지는 그 부스러기를 먹고 싶어 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다 부차적인 것이다. 주 예수가 칭찬하는 것은 어떤 부분이냐? 그녀는 주님이 자신을 개로 보든, 사람으로 보든, 마귀 사탄으로 보든 무엇으로 봐도 다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주님을 하나님으로 보았고, 예수가 주님이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고 사실이다. 주 예수가 하나님이고 주이며, 그녀가 마음속으로 확신하는 그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님이 그녀를 구원해도 좋고, 그녀를 구원하지 않아도 좋고, 그녀를 한 밥상에 앉아 같이 밥 먹는 사람으로 봐도 좋고, 제자나 그를 따르는 자로 봐도 좋다. 또 한 마리 발바리나 집 지키는 개로 봐도 좋다. 다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되었든, 그녀가 마음속으로 주 예수를 자기 마음속의 주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그녀의 가장 큰 믿음인 것이다.』라는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주 예수가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칭찬한 이유는 주님에 대한 그녀의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나안 여자는 주 예수가 전하는 도를 듣고, 행하는 기적을 보고, 예수는 바로 자신이 경배하고 앙망해야 하는 하나님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주 예수가 자신을 어떻게 보든, 어떤 태도로 대하든,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든 개의치 않았는데, 예수가 그녀를 개로 대하든, 따르는 자로 대하든, 모두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주께서 그녀를 어떻게 보든, 어떤 방식으로 대하든, 그것은 주님의 뜻이고, 자신은 마음속으로 주 예수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였고 조물주로 대하여 앙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가나안 여자는 주 예수께 도움을 청할 때 피조물의 이지를 갖출 수 있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위와 신분은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그런 믿음은 진실한 믿음으로, 값진 것이었고 또한 하나님께 아주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것에 기초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려움이나 시련에 부딪혀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어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께 믿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으시고 어려움을 해결받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점차 작아집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복만 얻으려고 하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대가를 치렀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원망하고, 어떤 사람은 삶 속에서 뜻하지 않은 일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런 이지가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일까요? 마음 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이런 모습은 모두 하나님의 실질에 대하여 인식이 없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평범한 사람으로 대한 것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며, 경외하는 마음은 더더욱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저는 다른 말씀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방식으로 너와 말을 하든 네 마음속의 하나님의 지위가 변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하나님과의 거리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나 하나님의 실질과 지위도 마음속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와 하나님 사이의 그 관계를 잘 처리할 수 있게 되고, 합당하게 이성적으로 대할 것이고, 선이 있게 되고, 제약을 받게 된다. 그렇지? 하지만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거기까지 도달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쉽게 해내지 못할 것이다.』 저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진리를 추구해야만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진실한 순복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이지와 이성을 갖추어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조물주를 경배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하신 사역이 우리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지라도 받아들이고 순복하면서 이치를 따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여자처럼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대하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축복을 주시든 주시지 않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피조물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야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할 수 있고, 우리의 인성과 이지도 점차 정상이 될 수 있으며, 피조물의 위치에서 조물주를 경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가나안 여자와 같은 믿음을 갖춘다면, 우리는 늘 하나님의 축복과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갖추고 있습니까?
호평
출처: 하나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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