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참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 14:9~1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0:30)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이란 바로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고,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일단은 반드시 육신이어야 하고, 그것도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사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의 함의는 바로 육신에서 역사하고 육신에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정상 인성이 있는 그리스도는 영이 실제화되어, 정상 인성이 있고 정상 이지가 있으며 두뇌의 사유가 있는 그런 육신이다. ‘실제화’란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고,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바로 하나님 자신이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에 거하는 것이고,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을 통해 자신의 신성의 역사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화’, 즉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하나님 성육신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도 그리스도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짜이다. 그리스도란 땅에서 창현(彰顯)되는 하나님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땅에서 사역을 전개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역사를 완성하는 하나님만의 특유한 육신을 가리킨다. 이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육신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육신이며, 하나님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는 육신이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바로 그가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피조된 어떤 인류보다 높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어떤 사람보다 높다. 이런 연고로 그와 같이 사람의 외형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인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조된 인류이다. 똑같이 인성을 구비했지만 피조된 사람은 인성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 성육신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서 인성 외에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신성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상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신성은 사람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서라야 발표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신성이다. ……하나님이 성육신 되었다고 한 이상, 그의 실질은 바로 인성과 신성의 결합이다. 이 결합을 하나님 자신이라 칭하고, 또한 땅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라 칭한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그가 성육신하여 생활하고 역사한 것은 모두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직분을 시작하기 전의 생활인데, 보통 사람의 가정에서 생활하고 극히 정상적인 인성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상 생활의 윤리와 법칙 그리고 사람의 정상적인 필요(먹고, 입고, 자고, 거하는 것)가 있고, 사람의 정상적인 연약이 있으며, 정상인의 희로애락이 있다. 즉, 첫 번째는 신성이 아닌 완전히 정상적인 인성에서 생활하면서 정상인의 모든 활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직분을 시작한 이후의 생활인데,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이 있는 보통 인성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는 외적으로 초자연적인 것들이 전혀 없고, 직분하는 것을 생활로 한다. 이때의 정상 인성은 완전히 신성의 정상적인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직분을 할 때의 정상 인성이 이미 충분히 직분을 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생활은 정상 인성에서 직분을 하는 생활이다. 즉,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생활이다. 첫 번째 생활을 완전하고 평범한 인성에서 한 까닭은 그때의 인성이 결코 신성의 모든 역사를 유지할 수 없고 성숙되지 않은 인성이어서 반드시 인성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즉 직분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인성이어야만 비로소 그가 해야 할 직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신인 이상, 반드시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생활은 단지 정상 인성에서 하는 생활이다. 그러나 두 번째 생활은 인성이 이미 충분히 사역을 담당하여 직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육신 하나님이 직분을 하는 기간의 생활은 바로 인성과 완전한 신성에서 하는 생활이다. 만일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강생하자마자 정식으로 직분을 시작하고, 또 모두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를 나타낸다면 육신의 실질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의 인성은 육신의 실질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고, 또한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류이다. 그리하여 육신의 인성은 말씀으로 된 하나님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되었다. 누가 “하나님이 육신이 되면 오직 신성만 있고 인성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논법이고, 또한 성육신이 되는 원칙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외형이 있는 신성에서 살면서 역사하는데, 그때의 인성은 전적으로 신성이 그 정상 육신에서 역사할 수 있도록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하는 것은 인성 속에 있는 신성이고, 신성이 역사하는 것이지 인성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신성은 인성에 가려진 신성이기에 그 실질은 여전히 완전한 신성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지 인성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하는 것은 이 육신이므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이 되어 사람의 외형과 사람의 실질이 있고, 더욱이 하나님의 실질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예수가 땅에서 한 생활도 모두 육신의 정상 생활이었고, 육신의 정상 인성에서 생활한 것이다. 역사하고 말씀하는 권병(역주: 권세)이든지, 병 고치고 귀신 쫓는 권병이든지, 이런 비범한 일들은 그가 직분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본적으로 없었다. 그가 29세 이전, 즉 직분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를 단지 정상 육신이라고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정상 육신인 데다가 또 직분을 하지 않아 사람은 그에게서 하나님이라는 낌새는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를 정상 사람이나 보통 사람으로 보았을 뿐이다. 이는 당시에 사람들이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여긴 것과 같다. 사람이 보기에 그는 보통 사람의 아들이었기에 그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임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비록 그가 직분을 할 때에 많은 표적을 나타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모두 그가 정상 인성의 외형을 갖춘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그의 정상 인성과 그가 한 사역, 이 두 방면은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 이미 완전히 육신에 왔고 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었음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역사하기 전에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는 것도, 그 후에 그가 사역을 한 것도 여전히 그가 평범한 육신임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그가 표적과 기사를 나타냈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든, 모두 정상 인성의 육신에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표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육신이 하나님의 권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의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런 권병이 있음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그가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가 해야 할 직분 내의 사역이고, 인성으로 가리워진 신성의 발표이다. 그가 어떻게 표적을 나타내든지, 어떻게 그의 권병을 분명히 나타내든지, 그는 여전히 정상 인성에서 생활했고, 여전히 정상적인 육신이었다. 그가 십자가에 오르고 죽음에서 부활하기 전에는 계속 정상적인 육신에서 살고 있었다. 사람에게 은혜를 주고 사람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모두 직분 내의 일이었고, 모두 정상적인 육신에서 역사한 것이었다. 그가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어떻게 했든지 그는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그가 하나님 자신이고 행한 것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일지라도 그는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기 때문에 식사도 하고 옷도 입었으며, 그에게 정상 인성의 요구도 있었고 정상인의 이지(理智)와 사유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은 그가 정상적인 사람임을 증명하고, 그 정상적인 사람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이지 결코 비범한 육신이 아님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성육신의 인성은 육신에서 하는 신성의 정상적인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정상 인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또한 육신의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바로 육신에서 하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육신에 정상 인성의 사유가 없다면 하나님이 육신에서 역사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육신에서 해야 할 사역은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은 비록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가 있지만, 그의 역사에는 사람의 사유가 전혀 뒤섞여 있지 않다. 그는 정상 사유가 있는 인성에서 역사하고, 사유가 있는 인성의 전제하에서 역사하는 것이지, 결코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를 발휘하여 역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거하고 있는 육신의 사유가 얼마나 높든, 그의 역사에는 여전히 논리학이나 사유학이 뒤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사역은 육신의 사유로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신성의 역사가 인성에서 직접 발표된 것이다. 그의 사역은 모두 그가 해야 할 직분이고, 어느 단계도 그의 머리로 궁리해 낸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며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과 같은 것은 머리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또한 두뇌 사유가 있는 그 어떤 사람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복 사역도 마찬가지로 성육신 하나님이 해야 할 직분이다. 그러나 이 사역은 결코 사람의 뜻이 아니다. 이 사역은 모두 신성이 해야 할 사역이고, 혈기에 속한 사람은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은 반드시 두뇌의 정상적인 사유가 있어야 하고, 정상 인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반드시 정상 사유가 있는 인성에서 역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 역사의 실질이자 성육신 하나님의 실질이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성육신 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발표하여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해 주었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하는 것을 통해,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형상이 있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육신 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소유소시 등등을 모두 구체화하고 인성화하였다. 비록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말하면, 인자의 겉모습은 어느 정도 국한성이 있지만 인자의 실질과 소유소시는 완전히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할 수 있는데, 단지 발표하는 형식상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인자의 인성이든 아니면 신성이든 다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은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역사하고, 육신의 각도에서 말씀하고, 인자의 신분과 지위에 서서 인류를 마주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실제적인 말씀과 역사를 접촉하고 체험하는 기회가 있게 하였을 뿐이다.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성과 자신을 낮춘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 주고, 그와 동시에 또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실과 실제에 대해 기초적인 인식과 기초적인 정의도 있게 하였을 뿐이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비록 하나님 성육신의 겉모습이 사람과 똑같고 또한 사람의 지식도 배우고, 사람의 언어로 말하며, 심지어 어떤 때는 사람의 방식을 쓰거나 사람의 논법을 인용하여 자신의 뜻을 표현하였지만, 인류를 대하고 일을 대하는 그의 실질은 패괴된 인류와 절대로 같지 않고, 또한 그가 서는 각도와 높이는 그 어떤 패괴된 인류도 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 자신이 입은 육신도 하나님 자신의 실질을 구비하고 있고, 그의 마음과 인성에서 발표해 낸 것도 다 진리이다. ……하나님의 그 성육신이 얼마나 평범하든, 얼마나 정상적이든, 얼마나 낮든, 심지어 사람들이 얼마나 업신여기든 그의 생각과 인류를 향한 태도는 아무도 구비할 수 없고 모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영원히 신성의 각도에 서서, 조물주의 높이에 서서 인류를 관찰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실질로, 하나님의 마음 상태로 인류를 대하고 있다. 그는 절대로 보통 사람의 높이에서, 패괴된 사람의 각도에서 인류를 대할 리가 없다. 사람은 인간의 안목으로 인류를 바라보고, 사람의 지식과 사람의 규례, 사람의 학설 등등을 가늠 기준으로 삼아 인류를 바라본다. 그 범위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범위이고, 패괴된 인류가 닿을 수 있는 범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안목과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가늠 기준으로 인류를 바라본다. 그 범위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위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육신과 패괴된 인류가 확연하게 다른 부분이다. 그 다른 점은 각자의 실질로 인해 결정된 것인데, 바로 그 다른 실질로 각자의 신분과 지위가 결정된 것이고, 사물을 대하는 각자의 각도와 높이도 결정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그가 역사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은 직접 영을 대표한다. 그가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것이고 하는 말씀도 영이 하는 것인데, 다만 말씀으로 된 육신에 의해 발표할 뿐이다. 실제상 바로 영의 발표이고 그가 하는 사역과 말씀은 그의 실질을 대표한다.』
<실행 (7)>에서 발췌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하나님의 영은 전능하고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그의 육신도 지고지상하고 전능하고 거룩하고 공의로운 것이다. 이러한 육신은 공의로운 일만 하고 인류에게 유익한 일만 하며 거룩하고 휘황하고 위대한 일만 할 뿐,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 영을 배반하는 일은 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아주 엄중한 문제―배반 (2)>에서 발췌
『성육신한 하나님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이 육신은 육체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 같지 않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혈기에 속하지 않는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있는데, 그의 신성은 어떤 사람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에서의 모든 정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인성이든 신성이든 다 천부의 뜻에 순복한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영이자 신성이므로, 그의 실질 자체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다. 이 실질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할 리가 없으며, 그는 자신의 사역을 허무는 일을 할 리가 없고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할 리도 없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경영에 방해되는 사역을 할 리가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성령 역사의 실질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 자신의 경영을 위한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역사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 된 이상 그의 실질을 육신에 실제화하여 그의 육신이 족히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 된 기간에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하나님 영의 모든 역사를 대신하고, 게다가 말씀이 육신 된 기간의 전체 사역은 그리스도의 역사를 핵심으로 한다. 그 외에 어느 한 시대의 사역도 섞여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된 이상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고, 육신에 온 이상 육신에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이든 어쨌든 다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직분을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 그 자체가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또 자신의 권병에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는데, 영의 역사이든 아니면 육신의 역사이든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만물의 권병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 육신도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있는 하나님은 또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또 자신의 권병에 순복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한다”는 데에 내포된 뜻이다. 하나님은 영이어도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떻게 말씀하든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사역을 하는데, 그는 방해하거나 가로막지도 않고, 더욱이 서로 모순되는 사역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실질은 같은 것이며,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하나의 사역을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두 가지 속성이 있지만 그 실질은 모두 같은 것으로, 다 하나님 자신의 실질과 신분이 있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고, 하나님의 실질은 선한 것이다. 그는 모든 미와 선의 발표이고, 또한 모든 사랑의 발표이다. 설령 육신에 있는 하나님이라고 해도 아버지 하나님께 거역하는 일을 하지 않고, 그 자신을 희생한다고 해도 기꺼이 원하며 아무런 선택도 없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고(自高)한 성분이 없고, 교만하고 자대(自大)하거나 간사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런 것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에게 사탄과 같은 속성이 있게 된 까닭은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고 사탄의 속성은 없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할 때, 사역이 얼마나 힘들고 육신이 얼마나 연약하든지 그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방해되는 일을 할 리가 없고, 더욱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거역할 리도 없으며, 차라리 육신이 고통을 받을지언정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 마치 예수가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없다. 비록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지만 여전히 육신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육신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한다. 이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면 하나님의 실질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실질만 있기에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하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복하지도 못한다. 그리스도 외의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또한 아무도 하나님이 부탁한 사역을 직접 담당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경영을 자기가 해야 할 본분으로 삼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실질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사탄의 속성이 있는 자라면 그리스도라고 칭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는 까닭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실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후의 앞날을 위한 것이지만, 그리스도가 역사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그가 비록 육신으로 있지만, 그의 인성은 육체에 속한 사람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에게는 특정된 성격이 있는데, 이 성격 또한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신성은 연약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연약이란 그의 인성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연약은 어떤 상황에서는 신성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범위가 있고 기한이 있는 것이지 끝없이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신성의 사역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인성이 어떠한지를 상관치 않는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완전히 신성의 지배를 받는다. 인성에서의 정상 생활을 제외하고 인성에서의 모든 활동은 신성의 영향을 받고 있고, 또한 신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에게 인성이 있다고 해도 신성의 사역과 서로 방해되지 않는 까닭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 인성은 비록 처세에 미숙한 인성이지만, 신성의 정상 사역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의 인성이 패괴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직접 신성의 지배를 받고, 또한 그에게 일반 사람보다 높은 이지(理智)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인성은 신성이 지배하여 역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성이고, 신성의 사역을 가장 잘 발표할 수 있는 인성이며, 신성의 사역에 가장 잘 순복할 수 있는 인성이다. 하나님은 육신에서 역사해도 여전히 육신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을 잃지 않고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으며,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다. 단지 그가 땅에 와서 피조물이 되어 피조물의 외형을 갖게 되었고 원래보다 인성이 더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가 하늘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소시(所是)로서 사람이 모방할 수 없다.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육신의 각도에 서서 경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한다”라는 이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도 그의 소시인데, 사람에게 요구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그렇게 행하였다. 그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만 요구하고 자신은 오히려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할’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다 그의 소시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역사하든지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가 있을 수 없고, 사람에 대한 그의 요구가 어떠하든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다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모든 사람보다 높으므로 그는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권병인데, 그 권병은 바로 신성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소시이다. 이 성품과 소시로 그의 신분이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이 얼마나 정상이든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고, 그가 어느 각도에 서서 말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든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우매무지한 사람은 흔히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그리스도의 결점으로 본다. 그가 어떻게 신성의 소시를 표현하고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든지 사람은 그가 바로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순복과 낮춤을 표현할수록 우매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더욱 경시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 배척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위대한 형상이 있는 ‘위인’들을 책상 위에 놓고 공양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이 성육신 된 실질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데에 있고,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원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성으로 가려지지 않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으며, 비범한 인성을 갖고 있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항상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좋아하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에게는 인성이 없고 피조물의 속성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항상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언제나 경멸하는 태도를 갖는다.
그리스도가 땅에 와서 비록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여 역사할 수 있지만 그가 땅에 온 목적은 사람에게 그의 육신의 형상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식견을 넓히게 하려는 것도 아니라, 사람이 그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아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신의 기능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육신에서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결코 사람에게 그의 육신의 실질을 완전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떻게 역사하든 육신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모두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에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전부 나타내어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육신이 하는 사역은 지금까지 사람이 상상한 대로 그렇게 초자연적이거나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리스도가 육신에서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친히 하고 있지만, 그는 하늘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사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지도 않고 육신에서 비미은장한다. 그리스도가 아닌, 그리스도라고 사칭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그리스도의 속성이 없다. 거짓 그리스도의 교만방자하고 스스로를 높이는 성정으로부터 도대체 어떠한 육신이라야 그리스도인지를 대조해 낼 수 있다. 거짓 그리스도일수록 더욱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고, 더욱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사람을 미혹한다. 거짓 그리스도라면 하나님의 속성이 없고, 그리스도라면 거짓 그리스도의 성분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다. 하나님이 성육신 된 것은 단지 육신에서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행하는 사역으로 자신의 신분을 실증하고, 자신의 유로로 자신의 실질을 실증한다. 그의 실질은 근거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신분은 자신이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한 사역과 그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비록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 있고, 게다가 그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는 영과 다른 육신이고, 영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육신의 외형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그가 어떻게 정상적이든, 어떻게 연약하든, 또한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든, 그의 신성을 부인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께는 정상 인성과 정상 인성의 연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성의 기묘와 난측(難測) 그리고 육신의 모든 행사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는 인성과 신성이 다 아주 실제적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조금도 공허하지 않고, 조금도 초자연적이지 않다. 그가 땅에 온 주요 목적은 역사하는 것이다. 땅에서 역사하려면 반드시 정상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의 위력이 얼마나 크든지 그의 고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인성이 비록 매우 중요하지만 인성은 결코 그의 실질이 아니다. 그의 실질은 신성이다. 그러므로 그는 땅에서 직분을 시작할 때 자신의 신성의 소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의 인성은 다만 육신의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여 신성이 육신에서 정상적으로 역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역의 전부를 지배하는 것은 신성이다. 그가 사역을 완성하면 그는 자신의 직분을 다한 것이며, 사람이 인식해야 할 것은 바로 그의 모든 역사인데, 역사하는 것으로 사람에게 그를 알게 한다. 역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신성의 소시를 아주 완전하게 발표하는데, 인성이 섞여 있는 성품이 아니고 사유와 인위적인 것이 섞여 있는 소시도 아니다. 그의 모든 직분이 다 끝날 때에 그는 이미 자신이 발표해야 할 성품을 완전무결하게 다 발표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역사는 어떠한 사람의 지시도 받지 않고, 그의 성품의 발표 역시 상당히 자유로운데, 두뇌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사유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유로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도 해내지 못한다. 설사 환경이 열악하거나 조건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적당한 시간에 자신의 성품을 발표한다. 그리스도이면 그리스도의 소시를 발표하고,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성품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그를 대적하거나 그에 대해 관념이 있다고 할지라도 누구도 사람의 관념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가 발표한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못한다. 무릇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찾으려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성의 발표로 인하여 그가 그리스도임을 인정할 것이고, 절대로 어느 한 방면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매우 미련할지라도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인지를 알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속셈으로 인하여 고의로 그리스도를 대적할 뿐이다. 만일 이런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인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발표한 신성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가 한 사역은 사람의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발표가 그의 실질을 결정한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부탁을 완성할 수 있고,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 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의 자연적인 유로도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자연적인 유로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발표한 것이 모방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교육하거나 수년간 양성한 결과가 아니며, 그 자신이 배운 것이나 꾸며 낸 것도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의 사역과 그의 발표를 부인하고, 그의 인성을 부인하며, 정상 인성의 모든 생활을 부인하지만, 누구도 그가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고, 천부의 뜻을 완성하러 온 것을 부인하지 못하며, 누구도 그가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비록 그의 형상이 그다지 사람의 이목을 끌지는 못했고, 비록 그가 말을 함에 있어 비범한 기개를 갖추지 못했으며, 비록 그의 역사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천지개벽하게 하거나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했지만, 그는 정말 진심으로 천부의 뜻을 이루고, 천부에게 완전히 순복하며, 죽기까지 순복하는 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그의 실질은 바로 그리스도의 실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모두 믿기 어려우나 또 확실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직분을 모두 다 마치고 나면 사람은 그의 역사에서 그의 성품을 볼 수 있고, 그의 소시가 모두 하늘의 하나님의 성품과 소시를 대표한다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때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을 종합해 보면 그는 바로 ‘말씀’으로 된 ‘육신’이지 혈기에 속한 사람과 같은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구비하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함 중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원문: 我們全人)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원문: 我們全人)를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분이다!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성육신하든, 그가 육신에서 역사하는 원칙은 변할 수 없다. 그는 말씀으로 된 육신이지만 또 육신을 벗어나서 역사할 수 없고, 더욱이 말씀이 육신 되었으나 또 육신의 정상 인성에서 역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 성육신은 의의가 없게 되고, 더욱이 ‘말씀’이 육신 된 의의가 조금도 없게 된다. 더구나 하나님이 성육신 된 것은 오직 하늘의 아버지(즉, 영)만 알고, 그 외는 육신 자신마저도 모르고 하늘의 사자도 모른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역사는 더욱 정상적이 되었고, 또한 확실히 ‘도’가 육신 된 것이고 ‘말씀’이 육신 된 것임을 더욱 나타낼 수 있으며, 그의 육신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이 육신은 사람이자 하나님이고,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자 완전한 신성이 있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 또한 영과 크게 다르더라도 사람을 구원하는 이는 여전히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고, 영이자 육신이다. 어떻게 칭하든, 결국은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과 육신은 갈라놓을 수 없고, 사역은 육신이 하는 것이자 하나님의 영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영의 신분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영의 발표에는 몇 방면이 포함되는가? 어떤 때는 인성에서 역사하고 어떤 때는 신성에서 역사하는데, 어쨌든 다 영의 지배를 받는다. ……오늘 말하는 실제의 하나님 자신은 인성에서도 역사하고 신성에서도 역사한다. 실제의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 정상 인성의 역사도 있고 정상 인성의 생활도 있고 완전한 신성의 역사도 있게 되어 인성과 신성이 일체로 연결되었다. 또한 이것은 다 말씀으로 이룬 것인데, 인성에서든 신성에서든 모두 말씀하고 음성을 발한다. 인성에서의 역사는 인성의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사람이 접촉하기 쉽고 깨닫기 쉬우며 통속적이고 알기 쉬워 모든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으므로, 지식이 있는 자든 학력이 낮은 자든 다 받아들일 수 있다. 신성에서의 역사도 여전히 말씀으로 하는데, 공급이 가득하고 생명이 가득하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고 인성의 취향과 연관되지 않으며, 인성의 제한이 없고 어떠한 정상 인성의 구속도 받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육신 중에서 역사하지만 영의 직접적인 발표이다.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영의 모든 역사와 말씀을 정상 인성에 의해 하는 것이고, 성육신에 의해 하는 것인데, 바로 하나님의 영이 인성 역사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육신 중에서 신성의 사역도 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하나님에게서 너는 하나님의 인성에서의 역사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신성 역사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더 실제적인,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 의의이다. 네가 만약 이것을 꿰뚫어 보았다면 너는 하나님의 각 부분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으며, 신성 역사를 너무 지나치게 중요시하지도 않고 인성에서의 역사를 너무 가볍게 보지도 않으며, 극단으로 가지도 않고 굽은 길을 걷지도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제 하나님이란 함의는 영의 지배를 받는 인성 역사와 신성 역사를 육신 중에서 발표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생생하고 생동하게 형상적으로 창현(彰顯)하고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것을 보게 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보게 한다.』
<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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