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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매일 성경/성경 예언

하나님의 이름: 요한계시록 3장, 하나님 이름의 비밀에 대한 나눔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러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3장에 주님이 다시 오시면 새 이름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이름에 관한 비밀을 읽어 보면서 함께 알아봅시다.

목차

   .하나님의 이름은 바뀔 수 있는가, 없는가
   .하나님이 시대 별로 다른 이름을 취하신 의미
   .하나님의 말세의 새 이름을 통해 주의 재림을 맞이하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계 6:12),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이처럼 주님은 그의 재림 때에는 각종 재난이 발생하고 달이 붉어지는 현상 등의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명 블러드 문이라 불리는, 달이 피같이 붉어지는 현상이 2011년, 2013년, 2014 년 4월에서 2015년 9월에 걸쳐 모두 4번 연이어 발생하였고, 해가 어두워지는 희귀한 천문 현상이 같이 나타났습니다. 근년에 들어 국제 정세도 불안정합니다. 일부 지역에는 테러 사태가 발생하고, 곳곳에서 지진, 가뭄, 홍수, 화재 등의 재난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0년에 접어들면서 재난은 더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종 폐렴 바이러스인 코로나 19가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지구촌 전체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또 호주는 수개월 동안 계속되는 산불로 수억 마리의 야생 동물이 죽었고 엄청난 지역 오염이 퍼지고 있습니다. 미국 전역에는 목숨을 빼앗아가는 독감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를 포함하여 여러 지방에 역대급 폭설이 쏟아져 도시 전체가 눈폭풍으로 뒤덮였습니다. 동아프리카도 25년 만에 나타난 역대급 메뚜기 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으며, 수천만 명이 식량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푸에르토리코의 경우는 102년 만에 최강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에도 화산 폭발로 도시가 화산재 피해를 입고 있으며, 지진까지 발생했습니다. 또한 북미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재앙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달이 피같이 붉어지는 현상도 네 번 연속 일어나는 상황은 주님의 재림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말세임을 느끼며 예수님 재림의 때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오셨고 새 이름을 바꾸어 새 사역을 하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라는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의 이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며, 오직 예수만이 구주임을 굳게 믿고,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고 다른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주님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오늘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진리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바뀔 수 있는가,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오직 예수이며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하나님의 이름은 정말 영원불변할까요? 먼저 성경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 3:15)

    성경 기록을 보면,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여호와 외에는 구주가 없었고 여호와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은혜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을까요? 왜 예수의 이름을 지키기 시작했을까요? 게다가 성경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생각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뀐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여호와’와 ‘예수’의 이름 중에 하나님의 유일한 이름은 어느 것일까요?

    사실 ‘대대로 기억할 표호’라 함은 그 시대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절대 바뀌지 않음을 뜻합니다. 즉, 그 시대의 사역이 끝나지 않는 한, 그 시대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새 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새 이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하셨습니다. 그 시대에서 사람은 ‘여호와’의 이름을 굳게 지켜야 했으며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셔서 구속 사역을 하실 때는 율법시대의 사역이 끝났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의 이름을 거부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계속 지킨다면 성령의 역사에서 도태되고 버려져 어둠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과거 베드로나 요한 등의 제자들처럼 성령의 역사를 얻고 주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의 새 이름을 받아들이는 사람뿐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새 시대의 사역을 함에 따라 바뀌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뀌든 그는 한 분이시며 다만 호칭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고 말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이 영원히 바뀌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바뀌지 않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영원불변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의 이름과 사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의 6천년 경륜이 끝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느냐? 그가 영원불변하다면 왜 두 시대의 사역을 했겠느냐? …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그의 고유한 소유와 어떠함을 두고 말한 것이다. 너희는 6천년 사역을 어느 한곳에 고정해 두거나 케케묵은 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 머물 수는 없다. 이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사역했던 것과 같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사역 이상 3>중에서) 이처럼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바뀔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사역을 하시면서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이름이든 “예수”라는 이름이든 하나님의 본질은 변함이 없으며 여전히 한 분이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재림하실 때 새 이름으로 오셨고, 우리가 그를 받아들이면 그것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것이 됩니다. 과거 유대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직 메시야라고 불려야 그들의 하나님이자 구주라고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하실 때, 대적하고 정죄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렇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하나님의 큰 징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선례를 교훈 삼아 절대 자기 생각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이름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말세에도 하나님은 예수라고 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면 하나님을 규정해 버리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왜 시대 별로 다른 이름을 취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다른 이름을 취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함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 제물을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 제물을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죄에서 인류를 속량한 속죄 제물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사람들이 말세에도 구주 예수가 강림하기를 소망하고, 유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서 강림하기를 소망한다면, 전체 6천년 경륜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속시대에 머물 것이다. 또한 말세가 영영 도래하지도 않고, 시대를 끝내지도 못할 것이다. ‘구주 예수’는 단지 인류를 속량하고 구원하는 분이고, 내가 택한 ‘예수’란 이름은 단지 은혜시대의 모든 죄인을 위해 생겨난 이름이지 온 인류를 끝내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중에서)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을 취하신 의미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하실 사역을 상징하며,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선포하신 위엄과 진노, 저주와 긍휼의 성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 인간에게 죄란 무엇인지,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나아가 율법과 계명을 지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어기는 자는 저주와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하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율법을 준수했고,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였으며, 여호와의 인도를 받으며 수천 년을 보냈습니다.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더 심히 패괴된 인간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바칠 제물이 없어 다 죽어야 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은혜시대를 여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취하시고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은혜 시대에 하신 사역을 상징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베푸신 긍휼과 사랑과 자비의 성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회개의 도를 주셨으며, 궁극적으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이로써 인간에게 더는 율법에 의해 정죄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시대 별로 하나님은 고유한 이름이 있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히 상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새 시대의 새로운 사역을 하실 때마다 시대적 의미를 가진 이름을 취하여 그 시대에서 행하실 사역과 그의 성품을 상징하셨습니다. 나아가 우리에게 하나님은 늘 새로운 분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시대의 사역을 하시면 더는 옛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의 새 시대의 이름을 받아들여야 성령의 역사를 얻고 하나님께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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