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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매일 성경/성경 구절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는 성경 구절

 

일생 동안 평안을 바라며 찾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 평안을 얻은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사람은 모두 평생 동안 명예와 이익을 위해 다투고 뛰어다닙니다. 비록 수년의 노력과 싸움 끝에 명예와 부를 얻었고, 육적으로는 만족감을 얻은 사람은 많지만 마음은 여전히 공허하고 평안이 없으며 괴롭기만 합니다. 그래서 ‘평안이 복’이라는 말이 있나 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아래의 구절을 읽어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행복을 느껴 봅시다.

 


빌립보서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민수기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레위기 26: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시편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잠언 3:2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로마서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진리 어록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인류의 마음의 세계는 어둡고 희망이 없고 공허한 것이다. 뒤이어 사회 과학자, 역사학자, 정치가들이 일어나 사회 과학론, 인류 진화론 등을 발표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했다는 진리에 어긋나는 관점을 인류의 머리와 마음에 채워 넣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만유 창조를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대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역의 기록과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나 전설로 대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존엄과 위대함은 희미해졌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한다는 믿음도 희미해졌다. 인류의 존망, 국가와 민족의 운명은 사람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인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이 오늘날 어디에서 사역하는지, 하나님이 인류의 종착지를 어떻게 주재하고 안배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느덧 인류의 문명은 이렇게 사람의 기대를 점점 벗어나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은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예전에 문명이 발전했던 나라에서 사는 사람조차 이런 원망을 품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기에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려 해도 아무 소용없다. 그 누구도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기에 그 누구도 인류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허감을 메우지 못하고, 어떤 사회적 담론도 공허의 질곡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과학, 지식, 자유, 민주, 즐김, 안락으로 사람이 얻는 것은 일시적인 위안일 뿐이다. 인류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불가피하게 계속 죄를 짓고, 사회의 불공평을 원망한다. 또한 이런 것들이 있어도 탐구하려는 인류의 갈망과 욕망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에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인류의 무의미한 희생과 탐구는 갈수록 사람에게 더 많은 고뇌를 안겨 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불안에 떨며 어떻게 인류의 미래와 앞길을 마주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심지어 인류는 과학과 지식을 두려워하고, 공허한 느낌은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네가 이 세상의 자유 국가에 있든, 인권이 없는 국가에 있든 너는 전혀 사람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네가 통치자이든, 통치를 받는 자이든 너는 인류의 운명, 비밀, 종착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영문도 모를 공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사회학자는 인류의 이런 공통 현상을 가리켜 사회 현상이라 말하지만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인은 한 명도 없다. 결국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와 하나님의 생명은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정 사회만이 아니다. 인류는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 공급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구원을 얻어야만 인류는 필요와 탐구 욕구, 마음의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다.』

『너는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너의 직책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으로 말미암아 네가 맡은 역할을 이행하고, 너의 인생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너의 배경이나 앞으로의 여정이 어떻든 간에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거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같은 일은 오직 한 분, 즉 만물을 주재하는 이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류가 있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일을 해 왔으며, 이 우주를 경영하고 만물이 변화하는 법칙과 운행 궤도를 다스려 왔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또한,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이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에 능동적 태도를 가진다면, 삶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주재를 진실로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이 예비한 모든 것에 진정으로 순종하고 싶어질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더 이상 거역하지 않고 더욱 단호한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그의 운명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 이는 운명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제 뜻대로 안개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되었을 때, 총명한 사람들은 그 주재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추구하던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의 주재를 분명하게 알 수 없을 때, 그 하루하루는 의미도 가치도 없으며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의 삶의 방식과 추구 목표는 끝없는 슬픔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어 지나온 길을 돌아볼 수조차 없게 한다. 오로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참된 삶을 추구할 때, 사람은 차츰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풀려나고 삶의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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