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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큐티/영적 분별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은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사람의 사역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이 체험한 요소가 많고,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소시이다.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는 것도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지만 그의 소시는 결코 사람의 소시와 같지 않다. 사람의 소시는 사람의 체험과 사람의 생애(원문: 身世)(사람이 일생에서 어떤 것을 체험했는지, 어떤 불행을 겪었는지, 또는 어떤 처세 철학을 갖게 되었는지)를 대표하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발표하는 소시도 서로 다르다. 네가 사회를 체험한 적이 있는지, 가정에서 네가 도대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체험했는지는 모두 네가 표현하는 것에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육신 역사에서 너는 그에게 도대체 사회 이력이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금 보듯 하여 각 부류 사람의 여러 가지 행실을 다 드러낼 수 있고, 사람의 패괴 성정과 패역 행위는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 ‘세상 사람’ 가운데서 생활하지 않지만 ‘보통 사람’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소시이다. 그는 비록 세상을 접하지 않았지만 갖가지 처세의 조목들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가 사람의 본성을 이미 다 측량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오늘이나 지난날의 것을 다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과는 전혀 다른 지혜와 사람이 측량하기 어려운 기묘가 담겨 있다. 이것이 그의 소시인데, 사람에게 공개하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그가 발표한 것은 비범한 사람의 소시가 아니라 영의 고유한 속성과 소시이다. 그는 열국을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오히려 천하의 일을 알고 있다. 그가 접촉하는 것은 지식이 없고 식견이 없는 일부 ‘유인원’이지만 오히려 지식보다 높고 위인보다 높은 말씀(원문: 言論)을 발표해 낸다. 또 인성이 전혀 없고, 인성의 상식과 인성 생활을 모르는 어리석고 마비된 한 무리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라고 요구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비천한 인성도 드러내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소시인데, 혈기에 속한 어떤 사람보다도 높은 그의 소시이다. 그는 복잡하고 자질구레하고 추한 사회생활을 부질없이 체험하지 않아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고,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낱낱이 드러낼 수 있다. 추한 사회생활은 그의 육신에 도움이 될 수 없다. 그의 역사와 말씀은 사람의 패역을 드러내는 것일 뿐, 사람에게 처세의 경험이나 교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함에 있어 사회를 조사할 필요도, 사람의 가정을 조사할 필요도 없다. 그가 사람을 드러내고 심판하는 것은 자신의 육신이 체험한 것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일찍이 사람의 패역을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하여 비로소 사람의 불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오직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혈기에 속하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역사를 놓고 말해도, 사람은 그가 도대체 어느 부류의 사람에 속하는지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사람은 그의 역사에 따라 그를 피조된 사람 가운데 소속시킬 수 없고, 그의 소시로도 그는 피조된 사람 가운데 소속될 수 없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비인류로 분류했다. 그러나 또 어느 부류에 넣을지 몰라 어쩔 수 없이 그를 ‘하나님’ 류에 분류시켰다.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도 전혀 이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육신의 체험을 대표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자신의 체험을 대표하는데, 저마다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직접 발표할 수 있으나 사람은 진리를 체험한 후에야 거기에 상응하는 체험을 발표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역사할 때 규례가 없고 시간과 지리적인 제한도 받지 않기에 언제 어디서나 그의 소시를 발표할 수 있으며, 그는 자유롭게 역사한다. 사람은 사역할 때 조건이 있고 배경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나 진리에 대한 체험도 발표하지 못한다. 하나님 자신의 역사인지, 사람의 사역인지는 대조해 보기만 하면, 너는 사람의 사역과 하나님 역사의 구별점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다만 시대를 이끌고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너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기능과 크게 다르기에, 너는 그 두 가지를 같이 놓고 논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역하려면 장기적인 양성과 온전함을 받아야 쓰임받을 수 있다. 또한 매우 높은 인성이 요구되는데, 정상 인성의 이지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데다가 많은 처세 원칙과 법칙도 더 잘 알아야 하고, 사람의 지혜와 윤리 지식도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은 이런 것을 갖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의 소시를 발표하고 직접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마구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시간에 하고 직분을 해야 할 때에 사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생활에 참여하지 않고, 사람의 사역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의 인성에는 이런 것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이런 것이 갖추어지지 않아도 그의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는 다만 직분을 해야 할 시간에 따라 자신의 직분을 하는데, 지위가 어떠하든 한결같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고 있다. 사람이 그를 어떻게 알고 있든, 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든, 그런 것은 그의 사역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3)>에서 발췌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발표가 그의 실질을 결정한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부탁을 완성할 수 있고,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 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의 자연적인 유로도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자연적인 유로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발표한 것이 모방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교육하거나 수년간 양성한 결과가 아니며, 그 자신이 배운 것이나 꾸며 낸 것도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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